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자리에 나가면 디자인을 전공하는 이가 아닌 독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독자를 만나며 전한 책에 둘러싼 용어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자 한다. 자신이 속한 환경이 아닌 경우, 각자가 생각하는 용어와 정의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추후 ‘나’라고 지칭)는 ‘디자인’과 ‘출판’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지어보고 한국의 퀴어 출판의 역사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요약 마침.
모든 인간은 디자이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으로 먹고산다. 행동을 구상하고 나서 실천 수단을 마련하기 전에, 그리고 결과를 가늠하기 전에 잠시 멈추고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는 활동 영역에는 모두 그들이 있다. 노먼 포터. (2020).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서울: 워크룸프레스. 12p.
작가님이세요? 아, 맞는데 아니요. 그러면 디자이너세요? 맞는데, 저는 아직 학생입니다. 책을 만들고 선보이는 자리에 가면 듣고 답하는데 고민이 드는 경우가 있다. 각자가 생각하는 단어에 대한 범위와 지칭하고 상상하는 바가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 문헌에서도 언급하다싶이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라고 생각이 들었던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를 교육시키는 선생님도 학생에게는 디자이너일 수 있고, 건물을 짓기 위해 뼈대를 나르고 만드는 사람들도 디자이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디자이너’라 말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쫓아가며 디자인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바라봤다.
디자인:
동) 도안하다; 계획하다, 목적하다, 의도하다…
명) 마음속에 품은 계획…
명)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디자인’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위와 같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가져왔을 때 무한으로 쓰일 수 있는 단어로 보인다. 각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에 대한 영역이 다르지만, 나의 글을 바라보는 이들은 책이나 그래픽의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혹은 예술대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의 관점). 디자인은 디자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다 공공적이며 퍼실리테이터 차원에서 심화시키고 다원화하고 충분하게 하려는 시도가 가시적으로 드러내야한다. 왜냐하면,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이 이제 한계에 다다라 사회적인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편집하고 시각언어의 형태로 작업하는 내가 생각하는 ‘디자이너’란 사회-문화적의 맥락을 이해하고 클라이언트에게 해석한 결과물을 보여줌으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전까지 한 작업을 바라봤을 때, 작은 목소리를 엮고 펼치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역에서 발화되는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 퀴어 작가의 작업, 비인간에 대한 존재, 그리고 지방에서 올라온 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판의 형태로 선보였다. 그렇다면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문헌을 통해 정의를 확인하고 싶었다.
사람들간의 소통을 위해 문자가 탄생했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책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인쇄술의 발달로 책을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은 책 내용과 레이아웃 그리고 감리가 모두 컴퓨터 한 대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더욱이 출판을 사람들에게 문턱을 낮추었다. 출판이 한 번 되고 나면 그 정보를 인용할 수 있다. 지식의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나는 1993년 암스테르담에서 교수가 교재로 나눠준 두꺼운 빨간 표지의 (복사기로 만들어진) 독립출판물을 여기 인용하려 한다. 어디서나 종이에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할 수 있다면 하나의 출판물이 된다는 독립출판의 개념이 1980년대부터 흘러져왔다. 2000년대에 들어 ‘새로운 출판 문화’가 출현하면서 동시대 독립 예술 서점 또한 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동시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출판 산업에 뛰어들고 많은 편집 디자인이 만들어져왔다. 사회가 발전함과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면서 출판과 작업에 임해야하는지 다시 또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출판되는 것이 아닌, 웹진의 형태로 웹에서의 출판도 이뤄진다. 하지만 완벽해보이는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여러 한계점이 존재한다. 웹은 도메인과 호스팅을 꾸준히 관리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사라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구사이 소식지는 2001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까지 온라인으로 발행된 기사가 유실되었으며, 미래의 출판은 어떤 모습이어야하는지 자문하기도 했다. 아카이브 북이라는 출판의 형식은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디지털 자료가 아날로그 물성을 가진 매체에 기록되는 현상을 ‘역-아카이브(Reverse-Archiv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0년부터 페미니즘 운동과 사회 운동을 통해 독립출판물이 발생했다. 퀴어 출판물은 더욱이 소수성을 가진 개개인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삶의 숨통을 틔우는 활동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다양한 퀴어 주체가 발행한 연속간행물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이들의 험난하고 외로운 역사를 반영하는 파편화된 존재 양식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연속간행물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울 만큼 발행 기간과 형태가 연속적이지 않고 기록과 수집에서 누락된 것이 많다. 게다가 대다수는 ISBN이 등재된 공식 출판물이 아니고, 제작자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조건들은 해당 대상의 연구에 한계와 제약으로 작용하는데, 실제로 국내에서 퀴어 연속간행물, 특히 디자인 관점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부족한 연구와 기록은 해당 분야에서 새롭게 생산되는 간행물에도 그 시작점과 참고점, 현재의 적절한 맥락을 제공해 주기 어렵다. 이 때문인지 1994년 이후 현재까지 퀴어를 다루는 간행물은 꾸준히 발행되어 오지만 여전히 새로 발행되는 간행물에 ‘국내 최초의 퀴어 잡지’, ‘국내 유일의 퀴어 잡지’ 등의 표현이 그 사실과 다르게 종종 사용된다. 그럼에도 『버디』는 한국 최초로, 등록된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판되고 전국 서점에 배포된 성적소수자 전문 잡지이다. 논문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퀴어를 다루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다. 다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게이 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에서 발행한 〈친구사이 소식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여섯』은 2015년 당시, 게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 없는 것을 바라보며 기획을 했다고 한다. 누가 원조인지를 따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퀴어 이슈라는 이유로 묻혀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원고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이성애자 남성인 나에겐 무척이나 동떨어진 경험과 감각이다. … 여섯 편을 읽는 동안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이들은 전혀 준비되지 못한 순간에 극단적인 단절과 영역 가르기라는 소형의 전투를 매일 겪고 있구나. … 언젠가 반드시 덜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록된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계속 더해질 것이다.
2015년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젠더라는 사회적 쟁점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갖추지 못한 창작 활동은 마치 비가 거세지는 야외에서 체육대회를 강행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기존에 활동하던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분야의 ‘기울기’와 사회적 인식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창작물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젠더에 관한 문제의식을 분명한 동기로 내걸고 활동을 시작하는 신진 창작자도 늘었다. 나는 ‘페미니즘’과 ‘퀴어(queer)’라는 젠더 이슈의 두 축을 중심으로, 텀블벅에서 어떤 프로젝트가 얼마만큼의 자본을 모아 어떤 활동을 실행에 옮겼는지 살펴보았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판 작업을 완성한 경험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응원을 하러 오는 경우도 있었고, 이전에도 텀블벅을 통해 나 역시 누군가를 후원하고 응원했던 경험이 있어서 퀴어-페미니즘에 대해 어색하지 않게 작업을 접한 것 같다. 어쩌면 용기를 내고 시도해준 이들이 있어 지금의 나 역시도 작은 목소리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디자인은 사회활동이다. 혼자서 작업을 하거나 개인사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디자이너는 대중, 클라이언트, 출판, 단체, 전문가 및 지인들과의 협력으로 활동한다. 사회가 변해가면서 디자이너는 사회와 더욱 밀접해졌고 사회는 디자이너를 인식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토대로 ‘디자이너’라 부를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1년, 교내 학생소수자권리위원회(이하 학소위)에서 만난 무무와 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고 전시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같은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경우가 몇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로 인해 많은 곳이 온라인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퀴어 사회나 각 지역에 닿지 못하는 이들에게 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 더 가까워진 부분도 있던 것 같다. 전시의 영역을 생각하다가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고 책을 제작하여 유통을 하기로 했다. 책은 어디에나 뻗어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살기만 한 무무와 제주에서 살다가 온 나와의 이야기를 하며 맞닿으며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지점들이 보였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 코로나 시기 이후 많은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진행되고 있을까에 대한 물음들. 퀴어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인터뷰 글을 올리고 전달했다. 코로나 시기에 직접 사람을 만기도 하면서 작업을 했고, 이 책은 독립출판이지만 출판사 등록을 통해 어딘가에 기록이 되고 싶다는 점을 이용하고 싶었다. ISBN이 있는 서적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영구적으로 보관이 된다는 점과 각 지역에 있는 도서관에 입고할 수 있는 창구를 넣어 누구나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을 접하고 싶었다. 추후, 다른 협업자(혹은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들어 작은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책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이야기되어진 내용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처음으로 전할 수 있는 내용들로금 작업을 이어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후에 어떤 작업, 어떤 출판을 할 것인가. 물음을 던지곤 한다. 그리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할까. 아직까지는 명확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책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왜냐하면, 책은 문명의 흔적이며, 인쇄물의 물리성은 언제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